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9I0TYBjRs0
처음 <선재 업고 튀어>를 봤을 때는 풋풋한 첫사랑에 시간여행을 더한 판타지 로맨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로맨스보다 제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바꾸고 싶을까? 누구에게나 한 번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겁니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 조금 더 잘해줄걸 후회되는 사람, 그때는 평범해서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야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 <선재 업고 튀어>는 바로 그런 후회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정말로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습니다.
죽은 최애를 살리기 위해 15년 전으로 돌아간 임솔
임솔에게 류선재는 단순히 좋아하는 스타가 아닙니다. 삶이 힘들었던 순간 다시 살아갈 용기를 갖게 해준 사람이자, 자신의 어두운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준 존재입니다. 그런 선재에게 비극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절망한 솔에게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그녀는 15년 전으로 돌아가 아직 학생이었던 선재를 만나게 됩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솔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선재를 살리는 것. 솔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선재의 주변을 맴돌며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막으려 합니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간 솔은 미래에서는 전혀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발견합니다.
자신에게 선재는 멀리서 바라보던 스타였지만, 선재에게 솔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어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 특별합니다.
미래에서는 선재가 솔을 살아가게 했고, 과거에서는 솔이 선재를 살리기 위해 달려갑니다.
누가 누구를 구했는지 쉽게 나눌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운명을 바꾸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과거의 사건 하나를 바꾸고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선재 업고 튀어>는 그렇게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솔이 한 번의 비극을 막으면 운명은 다른 모습으로 두 사람을 찾아옵니다. 선재를 살리려고 할수록 두 사람은 더욱 깊게 얽히고, 결국 솔은 자신과 선재의 인연 자체가 선재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있고 싶은데,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이 설정 때문에 두 사람의 로맨스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류선재의 사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이 달라지고 상황이 달라져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다시 솔을 향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작품에서 좋았던 것은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설정만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솔이 선재를 구하는 이야기처럼 보였는데, 끝까지 보고 나면 오히려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선재는 힘들었던 솔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고, 솔은 그런 선재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거슬러갑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에서 서로를 살아가게 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어디로 돌아가고 싶을까
38살이 된 지금 저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바꾸고 싶어서도, 후회되는 일을 다시 고치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그냥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보냈던 어린 시절의 저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어릴 때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줄 몰랐습니다. 하루가 참 길었고, 계절 하나가 지나가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보니 가끔은 그 반대의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오늘 하루만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 아프면 누군가가 걱정해주고, 늦게까지 밖에 있으면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내일의 생활비나 해야 할 일들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때가 문득 그리워집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에게도 저런 시간이 있었겠지’ 싶습니다. 그때는 너무 당연해서 몰랐던 것들이 지금 돌아보면 참 소중했습니다. 만약 솔처럼 정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미래를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어린 시절의 어느 평범한 하루를 다시 살아보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고, 별것 아닌 일에 크게 웃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던 그런 하루를요. 그리고 어린 저를 만날 수 있다면 무언가 대단한 조언을 해주기보다 꼭 한번 안아주고 싶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마음껏 살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지나갈 테니까.” <선재 업고 튀어>를 보면서 그래서 조금 이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보내고 있는 오늘 역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될 테니까요. 어쩌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제 마음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평범한 하루도 언젠가는 그리워질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한다면 어디까지 희생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조금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솔과 선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복과 안전까지 포기하려 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희생이 굉장히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까지 내놓을 수 있다는 마음이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절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것이 언제나 좋은 사랑일까요. 저는 사랑이 누군가를 위해 나를 완전히 없애는 것으로 증명되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내가 사라지는 것이 이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혼자 결정하는 것도 반드시 건강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작품에서 좋았던 것은 희생 자체보다 결국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고,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이 다시 손을 내밉니다. 어쩌면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일어날 모든 불행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힘든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바꿔주는 엄마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인생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사람처럼 인생에는 어느 정도 정답에 가까운 길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되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아이는 넘어지고, 아무리 계획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미래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미리 치워줄 수도 없습니다. 솔이 선재의 미래를 바꾸려고 끊임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이의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면 힘든 일은 하나도 겪지 않도록 바꿔주고 싶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살아갈 인생은 결국 아이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실패하지 않는 길을 모두 알려주는 엄마보다, 아이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힘든 날 돌아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넘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보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사람. 부모의 역할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요.
돌아갈 수 없으니까 지금 잘해야겠다는 마음
<선재 업고 튀어>를 처음에는 첫사랑과 타임슬립을 결합한 설레는 로맨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 제게 남은 것은 사랑보다 오히려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솔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상처 준 말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고, 지나간 순간을 다시 살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지나가지 않은 오늘은 조금 다르게 살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잠깐만”이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바라봐줄 수도 있고, 고마운 사람에게 ‘다음에 말해야지’ 미루지 않고 오늘 고맙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고 제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잘해야지’가 아니라, 돌아갈 수 없으니까 지금 잘해야겠다고.
언젠가 지금의 오늘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될 겁니다. 지금은 너무 평범해서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선재 업고 튀어>가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시간여행은 과거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기 전에 지금 함께 있는 시간을 제대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 저에게는 그것이 솔과 선재가 긴 시간을 돌아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9I0TYBjR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