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군부인 다시 보는 드라마
가진 것은 달랐지만 닮아 있던 두 사람
처음 <21세기 대군부인>의 설정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21세기에도 왕실이 존재한다면?’이라는 상상이었다.
왕과 왕족이 존재하고 양반과 평민이라는 신분이 여전히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 얼핏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처럼 보이는데, 보다 보면 이상하게 현실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고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성희주에게도 넘을 수 없는 벽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입니다. 반대로 이안대군은 태어날 때부터 높은 신분을 가졌지만 그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왕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늘 형의 뒤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한 사람은 신분이 없어서 자유롭지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신분을 가졌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단순히 ‘평민 여자가 왕족과 결혼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태어난 집안이 정하는 걸까, 아니면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 정하는 걸까?
신분이 필요했던 여자와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싶었던 남자
성희주는 돈과 능력, 미모까지 갖춘 성공한 여성입니다. 자신의 회사를 이끌 정도로 사업 능력도 뛰어나지만 평민의 서출이라는 출신은 끊임없이 그녀의 발목을 잡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자신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양반’이라는 이유 하나로 더 높은 대우를 받는 세상.
희주는 그런 현실을 참는 성격도 아닙니다.
집안에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강요받자 아버지가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는 대신 아예 자신이 직접 신랑감을 찾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이안대군입니다.
희주는 몇 번이나 거절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이안을 만나 대놓고 말합니다.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희주에게 이 결혼은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가로막았던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안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왕족이지만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늘 형의 그늘에서 살아왔고, 능력이 있어도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지 못한 채 왕실의 안정을 위해 자신을 낮춰야 했습니다.
희주와 이안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것 같지만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건으로 시작한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의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성희주와 이안대군은 왜 서로에게 끌렸을까?
성희주 - 아이유 배우
부족한 건 능력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희주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자신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며 주저앉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출생 때문에 기회를 빼앗깁니다.
그래서 희주가 원하는 신분 상승은 단순한 허영심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주는 자신에게 없던 ‘이름’을 얻어서라도 자신을 가로막는 세상과 한번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특히 이안이 희주를 보호하기 위해 물러서려고 했을 때 희주는 오히려 말합니다.
지키고 싶다면 물러서지 말고 싸우라고.
그 장면에서 희주는 보호받기만 하는 로맨스의 여주인공과 확실히 달라집니다.
이안대군 - 변우석 배우
모든 것을 가졌지만 자기 욕심을 가져보지 못한 남자
이안은 희주와 정반대입니다.
희주에게 없는 높은 신분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신분 때문에 자신의 욕심을 숨기고 살아왔습니다.왕족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감정보다 왕실을 먼저 생각해야 했고,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기도 어려웠습니다.그런 이안에게 희주는 처음으로 “욕심내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안이 희주에게 끌리는 이유도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희주는 이안이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채워주게 됩니다.
희주는 이안을 통해 자신을 가로막던 신분의 벽을 넘고, 이안은 희주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용기를 얻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20대 때는 사람을 볼 때 겉으로 보이는 조건에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경제적으로 얼마나 안정되어 있는지,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같은 것들이 꽤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도 오래 하다 보니 사람을 보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겉으로는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여도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화려한 조건은 없어도 내 이야기를 존중해주고 내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오래 남는 사람은 후자였습니다.
<21세기 대군부인>의 희주와 이안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주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대군부인’이라는 높은 신분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평생 자신의 출신부터 바라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자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바라봐주는 한 사람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요.
살다 보니 좋은 관계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만났느냐보다, 그 사람 옆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또 ‘왕자와 결혼해야’ 벽을 넘을 수 있는 걸까?
<21세기 대군부인>의 신분제 설정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21세기 현대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태어난 집안에 따라 기회와 대우가 달라진다는 설정 자체가 우리가 사는 현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희주는 이미 자신의 회사를 이끌 정도로 능력이 있고 경제적인 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희주조차 결국 왕족과 결혼해야만 자신을 가로막던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면 작품이 던진 문제의식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결국 가장 높은 신분을 얻는 것으로 주인공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조금 모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후반부로 갈수록 희주가 단순히 ‘대군부인이 되는 여자’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했다고 봅니다.
이안 역시 기존 왕실의 특권을 지키는 쪽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특권 자체를 내려놓으려 합니다.
두 사람이 기존 질서 안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왜 이런 계급이 필요한지를 묻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가 생깁니다.
두 아이 엄마의 생각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좋은 ‘출발선’일까
부모가 되고 나니 ‘출발선’이라는 말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내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부모라면 자연스러운 마음일 겁니다. 가능하면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고, 실패를 덜 했으면 좋겠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대군부인>을 보면서 조금 불편한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출발선을 만들어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출발선이 달라도 자기 힘으로 걸어갈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걸까.
부모가 모든 길을 미리 닦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것을 물려줘도 결국 아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힘, 부당한 일을 만났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용기, 다른 사람의 배경보다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는 눈일지도 모릅니다.
희주가 가진 가장 큰 힘도 돈이나 미모보다 자신을 함부로 평가하는 세상 앞에서 쉽게 고개 숙이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 작품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는 부모도 필요하지만, 어느 자리에 서더라도 자기 가치를 잊지 않는 아이로 키워주는 부모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결론
결국 두 사람이 바꾼 것은 신분이 아니라 세상이었다
처음에는 성희주가 이안대군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이루는 이야기가 중심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방향은 조금 달라집니다.
희주는 높은 신분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안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왕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결국 이안은 군주제 자체에 질문을 던지고, 국민의 선택을 통해 기존 왕실 질서가 바뀌게 됩니다. 이후 희주는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가고, 이안 역시 왕실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의 결말이 좋았습니다.
평민 여자가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태어날 때 정해진 신분 때문에 누군가는 평생 앞에 서고, 누군가는 평생 뒤에서 걸어야 하는 세상이 정말 옳은가?”
라는 질문까지 갔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계약이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희주는 이안에게 앞으로 걸어갈 용기를 주었고, 이안은 희주에게 더 이상 자신의 출생을 증명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21세기 대군부인>은 제게 신데렐라 로맨스보다 자신에게 붙어 있던 이름표를 떼어내고 결국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21세기 대군부인>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21세기에도 왕실과 신분제가 존재한다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평민 출신의 성공한 여성 성희주와 왕족 이안대군이 계약 결혼으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로맨스와 권력 갈등을 다룬 작품입니다.
Q. 성희주는 왜 이안대군과 결혼하려고 하나요?
처음부터 사랑 때문은 아닙니다. 아무리 능력과 재력을 갖춰도 자신의 출신 신분 때문에 기회를 빼앗기는 현실을 겪은 희주는 왕실과의 결혼을 통해 자신을 가로막는 신분의 벽을 넘으려 합니다.
Q. 이안대군은 왜 성희주를 좋아하게 되나요?
희주는 이안을 왕족이라는 신분으로만 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늘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온 이안에게 물러서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해줍니다. 그런 희주의 강단과 솔직함이 이안에게 특별한 의미가 됩니다.
Q. 두 사람의 결혼은 계약 결혼인가요?
처음에는 서로의 목적을 위한 계약적인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함께 여러 위기를 겪으며 서로를 걱정하고 지켜주는 과정에서 감정이 진짜 사랑으로 변해갑니다.
Q. <21세기 대군부인>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해피엔딩에 가깝습니다. 군주제 존속 여부가 국민 투표에 부쳐지고 변화가 이루어진 뒤, 희주는 자신의 일로 돌아갑니다. 두 사람 역시 왕실이라는 틀에 갇힌 관계가 아니라 보다 자유로운 삶을 선택합니다.
리뷰 별 5개
21세기 대군부인 줄거리와 결말, 성희주와 이안대군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신분 상승을 위한 계약 결혼에서 시작해 서로의 편이 되어가는 두 사람의 로맨스와 군주제, 계급, 특권에 대한 이야기를 38세 두 아이 엄마의 시선으로 풀어본 드라마 리뷰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XMoimTAJWc